[머니투데이 박은수 기자, 강선미 기자] [[기획 - 새 이름을 찾아서 ①] 한해 16만명 개명 신청…20~30대 "취직·결혼 위해" ]
#인천에 사는 조모군(17·학생)은 어릴 때부터 잦은 병치레에 시달렸다. 조군 부모님은 아들의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에 아는 절의 법사에게 새 이름을 받아왔다. 지난해 겨울 개명절차를 끝낸 조군은 “이전 이름이 낫다는 친구들, 지금이 좋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름을 바꾸고 난 후 아프지도 않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며 새 이름에 만족해했다.
#수년째 고시준비중인 이충성씨(35)는 “이름이 사주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작명소에 들러 새 이름을 받았다. 사주를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이름인 것 같아 내내 찜찜했다. 새 이름을 받고나니 내년에는 꼭 고시에 합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해 16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새 이름으로 살고 싶다’며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고 있다. 지난해 개명신청 건수는 15만7422건이었으며 올들어서도 4월까지 5만1807건이 접수됐다.
2004년만 해도 한해 4만6000명에 불과했던 개명신청이 이처럼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2005년 11월 대법원이 개인의 개명 허가권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내용으로 인정하면서부터다. 이후 개명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신청이 늘었고 각급 법원도 심사기준을 완화해 2007년 개명 허가율이 90%를 넘어섰다.
한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최근 7~8년내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었다”며 “예전에는 촌스럽거나 부르기 거북한 이름 위주로 신청했다면 요즘은 성명학적 이유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경기가 나빠지면서 취직을 위해 개명을 선택하는 20~30대 젊은이들도 늘었다. 사단법인 한국작명가협회 한 관계자는 “이름 바꾸기가 쉬워져 작명소를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취업과 결혼이 늦어져 고민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명절차가 쉬워졌더라도 섣부른 개명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단법인 한국작명가협회 김기승 이사장은 “개명 후 재개명을 하는 경우 법원의 허가율이 그리 높지 않다”며 “처음 신청할 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치국·김하녀·경운기…"친구들이 이름 갖고 놀려요"
개명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놀림 받거나 부르기 곤란한 이름’일 경우 우선적으로 개명을 생각하게 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김치국, 김하녀, 이창년, 조지나, 경운기, 서동개, 신간난, 구태놈, 양팔련, 임신, 방기생, 홍한심, 강호구, 송아지 등의 이름이 지난 20년 동안 이 같은 이유로 새 이름을 얻었다.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로부터 “무식하다”며 놀림받은 김모씨(53·개명 전 김무식)는 “이름 탓에 성격도 소심하게 바뀌었다. 사회 진출 후 주민등록증을 내밀거나 이름을 적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곤혹스러웠다”며 개명 이유를 밝혔다.
김기승 작명가협회 이사장은 “유방이라는 이름을 개명해준 적도 있다. 주전자, 양재기, 조진아 등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50~60대 어른들은 옛날에 이름을 촌스럽게 지었던 분들이 나이가 들어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에 이름 올리기 창피하다고 찾아오시거나 커뮤니티 활동이 늘어나면서 개명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롯데 손아섭 "최고가 되고 싶었다"…이름 바꾸고 실력 향상
스포츠선수나 연예인들의 경우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또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개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중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손아섭 선수(28)는 개명 후 성공한 대표사례로 꼽힌다.
2007년 입단 당시 손광민이었던 그는 2009년 타율 0.186, 3홈런, 4타점의 평범한 선수였으나 2008년 개명 후 2010년 타율 0.306, 11홈런, 47타점을 몰아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후 야구계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손아섭 선수는 개명 이유에 대해 “새 이름을 쓰면 부상없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며 “야구선수로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당시에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올 5월까지 이름을 바꿔 등록한 선수는 41명이다. 올해도 김지성(LG·개명 전 김영관), 백재엽(기아·백세웅) 등이 유니폼에 새 이름을 적었다.
축구선수 중에는 전남 전우영(전성찬) 부산 김재현(김응진) 제주 이우진(이강진) 선수가 올해 개명했다. 골프에서는 최경주(SK텔레콤·최말주) 정예나(SG골프·정영현) 김태훈(신한금융그룹·김범식) 등이 이름을 바꿨다.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서" 귀화한 외국인들
귀화 외국인은 모국 이름이 너무 길거나 부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개명을 택한다. 러시아 출신 학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지금은 코치로 활동중인 K리그 레전드 발레리 사리체프(러시아)는 ‘신의손’, 데니스 락티오노프(러시아)는 ‘이성남’으로 개명했다.
이들은 새 이름과 함께 성(姓)도 만들어야 한다. 방송인 로버트 할리(미국)는 1997년 ‘하일’로 개명하며 부산 영도 하씨의 시조가 됐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베른하르트 크반트(독일)는 독일을 본관으로 하는 이씨를 새로 만들고 ‘이한우’와 ‘이참’으로 두 번에 걸쳐 이름을 바꿨다.
귀화 외국인의 개명은 결혼 이주민 여성 사이에서도 활발하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베트남댁 이미경씨(27)는 2013년 모국 이름을 한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들이 엄마의 생소한 이름 때문에 놀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또 다른 필리핀 여성인 판야스메리벨에스씨(가명)는 “2005년 남편과 결혼 후 한국에서 살아보니 현지 이름은 발음이 어렵고 성별이나 성과 이름의 구분이 어려워 생활하기 불편한 점이 많다”며 2013년 뒤늦게 개명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2011년부터 결혼 이민자를 위해 ‘원스톱 개명서비스’를 지원하는데 신청건수가 △2011년 820건 △2012년 887건 △2013년 1077건 △2014년 1279건 등으로 증가했다.
◇20~30대 젊은이들 "취업·결혼 위해서라면"
최근엔 극심한 취업난 속에 취직을 위해 이름을 바꾸는 20~30대들이 늘고 있다. 20대 후반 취업준비생 정모씨(28)는 최근 작명소를 찾아 새 이름을 지었다. 매번 안타깝게 낙방하는데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영향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업 관련 커뮤니티 ‘취업뽀개기’ 익명게시판에는 ‘너무 강한 이름이라 바꿨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명’ ‘이름이 흔한데 불이익을 받을까’ 등 취업의 벽을 넘기 위한 수단으로 개명을 고려하는 이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서울시내 한 대학교 관계자는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 취업에 필요한 서류들을 개명 이름으로 고쳐 발급해주고 있다”며 “새 이름으로 학적을 수정할 수 있냐는 졸업생들의 문의가 1주일에 서너 번씩은 올 만큼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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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수 기자 utopia21@mt.co.kr, 강선미 기자 seonmi614@mt.co.kr
#인천에 사는 조모군(17·학생)은 어릴 때부터 잦은 병치레에 시달렸다. 조군 부모님은 아들의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에 아는 절의 법사에게 새 이름을 받아왔다. 지난해 겨울 개명절차를 끝낸 조군은 “이전 이름이 낫다는 친구들, 지금이 좋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름을 바꾸고 난 후 아프지도 않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며 새 이름에 만족해했다.
#수년째 고시준비중인 이충성씨(35)는 “이름이 사주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작명소에 들러 새 이름을 받았다. 사주를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이유가 이름인 것 같아 내내 찜찜했다. 새 이름을 받고나니 내년에는 꼭 고시에 합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해 16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새 이름으로 살고 싶다’며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고 있다. 지난해 개명신청 건수는 15만7422건이었으며 올들어서도 4월까지 5만1807건이 접수됐다.
2004년만 해도 한해 4만6000명에 불과했던 개명신청이 이처럼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2005년 11월 대법원이 개인의 개명 허가권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내용으로 인정하면서부터다. 이후 개명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신청이 늘었고 각급 법원도 심사기준을 완화해 2007년 개명 허가율이 90%를 넘어섰다.
한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최근 7~8년내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었다”며 “예전에는 촌스럽거나 부르기 거북한 이름 위주로 신청했다면 요즘은 성명학적 이유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경기가 나빠지면서 취직을 위해 개명을 선택하는 20~30대 젊은이들도 늘었다. 사단법인 한국작명가협회 한 관계자는 “이름 바꾸기가 쉬워져 작명소를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취업과 결혼이 늦어져 고민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명절차가 쉬워졌더라도 섣부른 개명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단법인 한국작명가협회 김기승 이사장은 “개명 후 재개명을 하는 경우 법원의 허가율이 그리 높지 않다”며 “처음 신청할 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명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놀림 받거나 부르기 곤란한 이름’일 경우 우선적으로 개명을 생각하게 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김치국, 김하녀, 이창년, 조지나, 경운기, 서동개, 신간난, 구태놈, 양팔련, 임신, 방기생, 홍한심, 강호구, 송아지 등의 이름이 지난 20년 동안 이 같은 이유로 새 이름을 얻었다.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로부터 “무식하다”며 놀림받은 김모씨(53·개명 전 김무식)는 “이름 탓에 성격도 소심하게 바뀌었다. 사회 진출 후 주민등록증을 내밀거나 이름을 적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곤혹스러웠다”며 개명 이유를 밝혔다.
김기승 작명가협회 이사장은 “유방이라는 이름을 개명해준 적도 있다. 주전자, 양재기, 조진아 등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50~60대 어른들은 옛날에 이름을 촌스럽게 지었던 분들이 나이가 들어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에 이름 올리기 창피하다고 찾아오시거나 커뮤니티 활동이 늘어나면서 개명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롯데 손아섭 "최고가 되고 싶었다"…이름 바꾸고 실력 향상
스포츠선수나 연예인들의 경우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또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개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중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손아섭 선수(28)는 개명 후 성공한 대표사례로 꼽힌다.
2007년 입단 당시 손광민이었던 그는 2009년 타율 0.186, 3홈런, 4타점의 평범한 선수였으나 2008년 개명 후 2010년 타율 0.306, 11홈런, 47타점을 몰아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후 야구계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손아섭 선수는 개명 이유에 대해 “새 이름을 쓰면 부상없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며 “야구선수로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당시에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올 5월까지 이름을 바꿔 등록한 선수는 41명이다. 올해도 김지성(LG·개명 전 김영관), 백재엽(기아·백세웅) 등이 유니폼에 새 이름을 적었다.
축구선수 중에는 전남 전우영(전성찬) 부산 김재현(김응진) 제주 이우진(이강진) 선수가 올해 개명했다. 골프에서는 최경주(SK텔레콤·최말주) 정예나(SG골프·정영현) 김태훈(신한금융그룹·김범식) 등이 이름을 바꿨다.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서" 귀화한 외국인들
이들은 새 이름과 함께 성(姓)도 만들어야 한다. 방송인 로버트 할리(미국)는 1997년 ‘하일’로 개명하며 부산 영도 하씨의 시조가 됐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베른하르트 크반트(독일)는 독일을 본관으로 하는 이씨를 새로 만들고 ‘이한우’와 ‘이참’으로 두 번에 걸쳐 이름을 바꿨다.
귀화 외국인의 개명은 결혼 이주민 여성 사이에서도 활발하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베트남댁 이미경씨(27)는 2013년 모국 이름을 한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들이 엄마의 생소한 이름 때문에 놀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또 다른 필리핀 여성인 판야스메리벨에스씨(가명)는 “2005년 남편과 결혼 후 한국에서 살아보니 현지 이름은 발음이 어렵고 성별이나 성과 이름의 구분이 어려워 생활하기 불편한 점이 많다”며 2013년 뒤늦게 개명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2011년부터 결혼 이민자를 위해 ‘원스톱 개명서비스’를 지원하는데 신청건수가 △2011년 820건 △2012년 887건 △2013년 1077건 △2014년 1279건 등으로 증가했다.
◇20~30대 젊은이들 "취업·결혼 위해서라면"
최근엔 극심한 취업난 속에 취직을 위해 이름을 바꾸는 20~30대들이 늘고 있다. 20대 후반 취업준비생 정모씨(28)는 최근 작명소를 찾아 새 이름을 지었다. 매번 안타깝게 낙방하는데는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영향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업 관련 커뮤니티 ‘취업뽀개기’ 익명게시판에는 ‘너무 강한 이름이라 바꿨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명’ ‘이름이 흔한데 불이익을 받을까’ 등 취업의 벽을 넘기 위한 수단으로 개명을 고려하는 이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서울시내 한 대학교 관계자는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 취업에 필요한 서류들을 개명 이름으로 고쳐 발급해주고 있다”며 “새 이름으로 학적을 수정할 수 있냐는 졸업생들의 문의가 1주일에 서너 번씩은 올 만큼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의 깊이있는 투자정보 'TOM칼럼'][부자들에게 배우는 성공 노하우 '줄리아 투자노트' ][내 삶을 바꾸는 정치뉴스 'the 300'][오늘 나의 운세는? '머니투데이운세' ][아찔한 girl~ 레이싱모델 핫포토 ]
박은수 기자 utopia21@mt.co.kr, 강선미 기자 seonmi614@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