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옥 박사의 『팔자간명비술』 십이운성 중에서
병
병(病)은 십이신살의 역마살(驛馬殺)에 해당하며, 이순(耳順)과 종심(從心)의 노년기로 영육이 무기력하고 장부(臟腑)의 생산기능이 저하되어 노쇠의 증상이 완연한 퇴기(退期)이다. 물론 사주에서 병은 육체의 완전한 쇠퇴를 뜻하는 노쇠(老衰)의 하학적 관점과, 원숙하고 노련한 정기(精氣)의 상학적 관점에서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종착(終着)을, 후자는 귀착(歸着)을 의미한다. 이는 사주의 구성에 따라 길흉이 확연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양일간의 병은 진취적 기상이 다대하여 창업할 수 있지만 음일간의 병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 수성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쪽도 주중에 사절을 보면 흉화가 가중된다. 흔히 쇠와 병의 작용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쇠의 반안이 활동적 휴수기(休囚期)라면 병은 비활동적 휴수기로서 양자는 미묘한 차이를 노정한다.
인생에서 병은 고독과 서러움 그 자체이다. 화려했던 영화의 시절을 반추하며 회한에 잠기지만 무기력한 현실은 참회마저 사치스러울 정도로 무용하다. 영욕의 물상이 파노라마처럼 스치지만 허무감과 절망감에 몸서리쳐야 한다. 그래서 친구가 그립고 사람이 보약처럼 느껴진다. 사주에 병이 있는 사람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그리며 미래지향적 발상을 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오류로부터 탈피하여 새롭고 건전한 자신이 희망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병의 사주에 활인업과 종교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사주의 병에는 박애주의와 자유주의의 피가 흐른다. 이들은 환상적 분위기를 잘 연출하며 순순히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기탄없이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극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할 정도로 몰입성이 강한 편이다. 이런 몰입성이 원인이 되어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험담을 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습성이 있다. 아울러 노파심이 강해 잔소리가 심하고 심리적 기복이 지나쳐 변덕스럽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이 분명하고 인정이 많아서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이다.
병은 외적으로 태연작약해도 내심 걱정이 많아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타인의 의견을 추종하려는 부화뇌동 심리 또한 강해 이박(耳薄)의 특성이 있다. 이는 한 가지 일에 정진해야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음이다. 마음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 늘 좌불안석이고 자신을 어떤 무리 속에 놓지 않으면 침잠하므로 종교와 신앙심으로 극복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그래서 병이 있으면 정기모임에 출석률이 높고 희생봉사 정신이 투철하여 총무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우연한 결과이지만 의약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대체로 사주에 병을 깔고 있음은 기묘한 일이다. 병의 역마살은 병마와 고독, 순정과 단순, 신심과 종교, 피로와 허약, 그리움과 기다림, 공생과 협조, 후회와 절망의 아이콘이다. 병의 직업적성은 모두가 감동 감화할 수 있는 문학계, 의료계, 종교계, 교육계, 활인업 등의 분야가 길하다.
연지의 병은 소년기에 신체 허약했음을 뜻한다. 월지의 역마는 다정다감하나 이동수가 많고 창업수가 있으나 실행력이 약해 불미하다. 일지의 병은 먼 곳에서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높으나 공방수가 있어 부부궁이 불미하다. 시지 역마는 자식의 해외유학을 암시하며 당주의 말년은 크게 기대할 것이 못된다. 특히 지지전체가 역마이면 직주의 변동이 심하고 신체 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상이 병지에 놓이면 자녀가 먼 곳에서 학문할 운이다. 재성병지는 재물복은 약하지만 부부는 유정하지만 혼담백리라고 할 정도로 먼 곳에서 배우자연이 닿는다. 바쁘게 움직여야 재물복이 절함이 없다. 관성병지는 직주의 이동이 심하지만 특히 외국과 인연이 깊다. 배우자 역시 먼 곳에서 만날 운명이다. 분주한 일상으로 공방수가 있다. 인성병지는 미모에 깔끔한 성격이다. 모친 간섭이 심할 수 있고, 당주는 중년 이후 향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