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 이석영 선생의 『四柱捷徑』에서 발췌했습니다.
상관상진(傷官傷盡)
상관상진은 상관을 극하여 그 상관이 기진맥진 하여졌다는 뜻이다. 상관을 상진 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관을 극하여 관을 상하게 하므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장차 어떠한 화가 돌아올지 몰라 항상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관은 나를 관제(管制)하는 관으로써 市郡之官인데 하나의 民으로써 관을 극하고 어찌 평안 할 수 있겠는가. 고로 상관을 상진 시켜야 되며,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상관은 내가 생하여 주는 자리이므로 내 기운이 설기 되어 도기(盜氣)가 되므로 제어시켜 자신의 기를 보하자는 뜻에서이다.
그러나 이 상관상진 사주에 일점의 관성도 머물러 있음이 없고 또 신왕 및 인수 운에 행하면 크게 귀히 된다고 하였다. 고로 定眞篇이라는 글에서 말하기를 "상관이 약견인수면 귀불가언이라.(傷官이 若見印綬면 貴不可言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물론 진상관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위와 같이 보면 그 상관은 모조리 극제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 되겠지만 때로는 상관을 상진 시키므로써 크게 불길하고 도리어 상관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크게 부귀가 되는 경우(가상관의 경우)가 있다.
이것을 구분하여 보면 身이 심히 왕하였을 때는 타를 생하여 설정시켜야 되므로 이러한 때에는 상관이 존재하므로써 천금 만금의 가치가 있는 것이며, 또 신이 심히 왕하여 상관이 미약할 때 재가 있어 상관용재격으로 큰 부자의 격인데 그 상관을 상진 시키면 더욱 오만 불손하여 관의 명에 항명하여 독재로써 패하기 쉬운 것이며, 또는 신약 사주에 살이 왕하여 공신(攻身)해 온다면 상관.식신은 그 살을 방어하는 능력이 있는데(傷官者는 制官殺故야.)그 식상을 상진 시키면 생명이 위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범(洪範)에서 말하기를 "식신이 명랑에 수원장이요 계모봉지에 불가당이라.(食神이 明朗에 壽元長이요 繼母逢之에 不可當이라.)"하였는데 이 말은 식신제살의 경우를 말함인데 이곳에서 계모라 함은 편인을 칭하는 것으로 그 편인은 살을 제하는 식신을 상진시키는 힘이 있는 까닭에 불가당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또 고가(古歌)에서 말하기를 "食神生旺에 喜生財인데 日柱剛强에 富祿齊라"고 하여 신왕에 식신상재격을 말하고 있다. 이상은 모두 상관(식신同)을 상진시켜서는 안되는 예를 매거해 놓은 것이니 우리는 항상 사주의 격국 상황과 신약 신강을 잘 살펴서 이 격은 "상관상진이라고 하겠다." 또는 "상관상진해서는 안되겠다."라는 것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무조건 전자의 설에만 의하여 "상관은 상진시켜야 된다." 또는 후자의 설에만 의하여 "상관은 상진시켜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편의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언해 둔다. 그러므로 연해자평 상관 詩訣에서도 말하기를 "상관이 상진에 최위기인데 우공상다에 반불의라.(傷官이 傷盡에 最爲奇인데 尤恐傷多에 反不宜라.)"고 하였다.
斷曰: 眞之傷官에 傷盡爲貴인데 運行 印綬면 福祿自旺이요, 假之傷官에 傷官爲病인데 運行 印綬면 身命이 甚危라. (단왈: 진지상관에 상진위귀인데 운행 인수면 복록자왕이요, 가지상관에 상관위병인데 운행 인수면 신명이 심위라.) 단언하면: 진상관에는 상진을 시키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운이 인성 운으로 가면 복록이 스스로 왕해질 것이요 가상관에는 상진이 병이 되는데 운이 인성 운으로 가면 몸과 목숨이 심히 위태롭다.
[주석] 泄氣(설기): 기운이 빠져나감.
盜氣(도기): 기운을 도둑 맞음. 기운을 빼앗김.
傷官이 若見印綬면 貴不可言이라.(상관이 약견인수면 귀불가언이라.): 상관이 만약 인수를 본다면 그 귀함은 가히 말로 다할 수 없다.
攻身(공신): 몸을 공격함. 즉 일간을 공격함.
食神이 明朗에 壽元長이요 繼母逢之에 不可當이라. (식신이 명랑에 수원장이요 계모봉지에 불가당이라.): 식신이 명랑하면 수명이 길것이나 계모(편인)를 만나면 가히 당할 수 없다. 食神生旺에 喜生財인데 日柱剛强에 富祿齊라(식신생왕에 희생재인데 일주강강에 부록제라.): 식신이 생함이 왕성하면 기쁘게 재를 생하는데 일주가 강하면 부와 록이 나란히 갖추어진다.
傷官이 傷盡에 最爲奇인데 尤恐傷多에 反不宜라.(상관이 상진에 최위기인데 우공상다에 반불의라.): 상관이 상진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데 더욱 두려운 것은 상함이 많을 때에는 반대로 맞지 않는 것이다.